Low Edition
Low Edition
바람이 일었다 The Wind Was Rising | 2025.11.8~11.30 | Onefifth(Gwangmyeong, South Korea) | Installation view


























고요에 잠긴 방
Stillness(no. 3), 2025
silkscreen on wax paper, wooden silkscreen frame
25.6×20.8×1.9cm
Edition 1/1
바람이 일었다 The Wind Was Rising | 2025.11.8~11.30 | Onefifth (Gwangmyeong, South Korea) | Artist Statement
그렇다. 좋든 나쁘든, 나는 내 감정을 작업으로 표현한다. 불안과 고요, 균형과 혼란이 교차하는 내면의 흐름 속에서 나는 늘 무언가를 붙잡고자 했다. 전시 「바람이 일었다」는 그렇게 지난 몇 년간 이어온 ‘불안’ 작업의 연장선에서 내면의 풍경을 그려낸 결과물이다.
1. 일상에 공백이 생길 때마다 어디선가 쿵, 쿵,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하의 공기는 하루아침 사이 조금 미적지근해졌다. 평소와 달리 그날은 강아지가 이끄는 대로 이곳저곳을 한가로이 방황했다. 헥헥거리는 숨소리만 들리고, 공원의 밤은 소름이 돋을 만큼 조용했다. 강아지는 텅 빈 놀이터를 황망하게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꺼낸 테니스공을 던져 주자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이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스팔트 바닥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줄을 당기는 강아지를 따라가 보니 납작해진 쥐가 보였다. 애써 돌아서려 해도 강아지는 자꾸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역한 형태와 강아지의 호기심 사이에서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몇 마리의 강아지들이 코를 킁킁대며 그 곁을 지나갔을까.
침대 위,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사이로 강아지의 부드러운 털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지나간 오늘을 떠올렸다. 오만 가지 생각으로 몸이 딱딱하게 무거워질 즈음, 아스팔트 길 한가운데 납작해진 쥐를 떠올렸다. 갑자기 퍽, 납작해지는 그 순간을 상상했다. 결국은 지루한 결말이다. 새벽바람에 커튼이 흔들리고, 나는 서글픈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쿵, 쿵, 쿵…
내일은 캔버스 귀퉁이에 작은 쥐를 그려야지.
뭐라도 그리면, 그래, 적어도 남아는 있겠지. 좋든 나쁘든.
2. 책상 위에 오래 방치해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책장을 넘겨본다. 무심코 넘긴 페이지 한가운데서 나는, 지난봄부터 진행 중이던 작업의 제목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바람이 일었다. … 처음에 그것은 어떤 진공의 목소리처럼 울렸다… 공간의 구멍을 통과하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 고요한 대기 사이에 벌어진 균열의 틈새. 그런데 흐느낌이, 세계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흐느낌이 있다. 유리창이 부르르 떨린다는 느낌,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바람이었다는 느낌. 소리가 커진다. 둔중한 통곡, 울음. 그러나 점점 더 깊어가는 밤에 비하면 그 울음은 울음이 아니라 사물의 삐걱거림에 불과하다. 가장 미세한 입자들의 파쇄, 세계의 종말을 구성하는 하나의 원자로.
그리고 다시금(…)” *¹
그동안 막연하게 그려온 불안이라는 세계를 활자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의 문장을 이 작업의 지표로 삼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우연한 발견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틈새에서 울려오는 불안의 리듬을 느꼈다. 단지 삐걱거림에 불과했을지 모를 종말의 진동 소리.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틈에서 삐걱대는 소리. 바람이 불어와 흩어지고 빨려 들어갔다가 아래에서 솟구치는 흐느낌. 그리고 다시, 고요에 잠긴 방. 그리고 다시, 하나의 원으로…” *²
3. 자아를 어떤 형태로 상상하든 상관없다. 나는 집 안의 틈새를 돌아다니는 작은 쥐일 수도,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깃털과 씨앗일지도, 바닥에 떨어진 하얀 탁구공일지도 모른다. 나의 쓸모, 창작의 막연함, 별의별 목적과 목표들, 무수한 생각들은 먼지처럼 흩어졌다가 거대한 돌 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방 안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생각들―남는 것은 오직 작은 숨소리…
나는 자아라는 허상에 매달려 매일 밤 시간을 허비하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맞는다. 몸을 움직인다. 어제까지 가을이라고 생각했던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손이 약간 시릴 정도로 춥다. 산책을 하고 빈 메일함을 열어보고, 오늘 작업할 것들을 들여다본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 비해 여전히 위태로운 일상과 앞날이 그려지지 않는 매일을 견딘다. 불안. 틈새의 심연으로부터 쿵, 쿵 울려오는 진동이 나를 흔들고, 밀어내고,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그냥 그것이 내 안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4. 그림의 시작은 디지털 드로잉이다. 이미지는 무한히 수정되고, 복제되며, 단번에 완결된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언제나 너무 빠르고 매끄럽다. 나는 완결을 멈추고, 이미지를 다시 손의 리듬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택한다.
디지털로 구축된 하나의 이미지는 미세한 크기의 망점으로 변환되어 각각의 판으로 해체된다. 나는 미묘한 차이와 실패, 우연으로 점철된 예측 불가능의 순간들을 지켜보며 캔버스 위 화면을 재구성해 나간다. 작업 과정은 통제와 우연이 교차하는 장(場)이다. 단 몇 초 만에 이미지가 생성되는 세계의 한켠에서 나는 한 겹의 잉크가 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그 시간을 바라본다. 그렇게 ‘지연된 생성’은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수많은 망점과 잉크의 층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다소 불완전한 이미지. 그 느린 축적의 과정 속에서 나는 그림의 확실한 온도를 느낀다.
전시 ≪바람이 일었다≫는 불안의 심리적 층위를 바탕으로 한다. 다만 불안을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진동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감지되는 공기의 움직임처럼, 불안 역시 삶의 흐름을 이루는 하나의 기류로 존재한다. ‘바람’은 그 순환의 은유이다. 전시는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다른 리듬으로 ‘바람’이라는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간다.
전시의 중심축인 실크스크린 연작 <바람이 일었다>는 이전 작업의 주요 모티브였던 ‘방 안의 커튼’을 내면의 파동과 순환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커튼은 닫혀 있으면서도 외부의 기류를 감지하는 존재로, 빛과 공기, 진동의 경계를 드러내는 얇은 막이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불안의 물리적 표면이자 내면의 확장체이기도 하다. 내면이라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시각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우연히 스쳐간 이미지와 순간들을 하나의 감각적 흐름으로 엮어왔다. 그것들은 내면의 파편이자, 나의 불안이 머물렀던 흔적들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작업의 시간 속에서 ‘나’를 구축해 나가는 힘으로써의 ‘불안’을 다시금 인식한다. 교훈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수긍. 나를 지탱해 온 생의 감각에 대한 기록, 그뿐이다.
1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109쪽
2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의 일부 문장을 참조·재구성함.
우리집에는 불안이 산다 There is anxiety in my house | 2024.8.22~8.27 | Space Rora (Seoul, South Korea) | Installation view


















우리집에는 불안이 산다 There is anxiety in my house | 2024.8.22~8.27 | Space Rora (Seoul, South Korea) | Artist Statement
오늘도 나는 작업실로 들어선다. 밤새 잉크 냄새로 묵직해진 공기를 잠시 환기하고 내부를 살펴본다. 중앙에 놓인 작업대엔 지난밤 찍다 만 캔버스 천과 실크틀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나는 전날의 흔적 앞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때로는 행동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땐 작업실 한 켠에 쌓여있는 문제들을 정리하며 산만한 시간을 보낸다. 사용한 판을 세척하고, 필요한 잉크를 만들고, 실크틀을 다시 만드는 등의 잡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거나 정기적인 고지서를 해결하기 위한 업무를 본다. 그리고 다시 캔버스로 돌아와 그 위에 펼쳐진 모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낸다.
대체로 나는 판화를, 그 작업 과정을 좋아한다(물론 지긋지긋하게 싫은 순간도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찍기 위해 소요되는 긴긴 준비 과정이, 판을 만들고 찍고 제거하고 또 반복하는 노동집약적인 행위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힘들게 새겨진 잉크의 질감과 찍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위기와 우연의 자국을 좋아한다. 거창하게도 이젠 매일매일 작업을 해나가는 시간만이 곧 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혼란스러운 내면의 현상에 대한 작업을 이어왔다. 그중에서도 주안점을 둔 것은 불안이다. 일상적인 불안,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 수많은 밤을 함께 지새웠던 불안, 긴 방황의 시간 동안 나를 줄곧 따라다녔던 불안, 나라는 사람의 가장 주된 정서일지도 모르는 불안, 나를 들뜨게도 주눅들게도 하는 불안, 그저 나의 불안.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의식하는 나는 스스로가 꽤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나를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될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나는 다시 작업대 앞으로 돌아온다. 작업은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기억 속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나는 무거운 솜 이불을 몸에 두르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커튼이 조금 걷힌 창문 너머로는 시멘트 담벼락과 벽돌 구멍 속에 꽂아둔 투명한 유리 조각들이, 그리고 그 너머에는 까만 산과 저물녘의 하늘, 마치 겹겹이 레이어링된 무대 위 장치 같은 풍경을 응시하는 내가 있다.) 나는 이 기억의 파편에 불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머릿속에 다시 떠올려 본다. 기억에서 나는 공간을, 바깥을, 그 너머를 응시하며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의 나에게로 돌아와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행위로 이어진다. 나는 나의 기억 속 장면을 대상화하여 사실적인 형태를 단순하게 구축하고 각각의 조형요소들을 도형화하고 재조합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판을 만들고 잉크를 내려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다. 어느덧 캔버스의 빈 공간은 색색의 잉크로 가득 채워지고, 시선은 형태와 형상으로 묘사된 그림 그 너머로 이어져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그렇게 나는 불안을 숨기고 또 드러내길 반복한다. 내내 붙잡고 있던 기억과 감정은 반복과 변형을 거쳐 변주되고 이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를 내면의 도상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이룰만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 대한 솔직한 결과값이라고는 할 수 있겠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조금 더 고독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과 공간뿐. 나는 내가 느끼는 이 삶이 조금 더 선명해지길 바라며 캔버스 위 빈 화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또 이 시간을 느릿하게 흘려보낸다.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Unnameable | 2020.5.27~5.31 | CICA Museum(Gimpo, South Korea) | Installation view






늙은 남자의 점, 선, 거품(no.2)
Old Man's Dot, Line and Bubbles(no.2), 2019
Carbon paper, colored pencil on paper(6 layers)
33.4×24.3cm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Unnameable | 2020.5.27~5.31 | CICA Museum(Gimpo, South Korea) | Artist Statement
어릴 때 길을 잃고 잠시 미아가 된 적이 있다.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난생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 내리게 되었는데(먼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불과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였다), 잠시 버스정류장에서 멍하니 있다가 사태를 파악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집 전화번호가 새겨져있었던 호돌이 목걸이 덕분에 나의 미아 경험은 반나절 만에 끝이 났지만,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도 없는 시골 버스정류장의 적막함과 영영 집으로 못 돌아갈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의 막막함.
이후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 인생을 뒤흔들만한 큰 사건도 없었고 절차대로 또래 집단과 비슷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중세 시대로 치면 기대수명을다 채우고도 몇 년이 더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갈 곳을 못 찾고 헤매는 것만 같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건가?
답 없는 고민으로 괴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에 판화를 접하고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점을찍고 선을 이어 이리저리 그려 보았다. 낯선 타인을 그리고,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그려 보았다. 살면서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관찰한 적이 있었나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얼굴을 그릴 때는 나와 닮은 점을 찾으려 하고 낯익은 얼굴에선 낯섦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애틋함과 연민을 느낀다.
당신도 고군분투하고 있었군요.
마음에 한 겹 쌓인다. 변한다. 사라진다. 또 한 겹 쌓인다.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날카로운 도구로 판에 점과 선을 새겨넣는다. 마음은, 형태는, 다시 잉크의 자국으로 남는다.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마음, 나도 알지 못하는 내 마음들이 켜켜이 쌓이고 뒤엉키고 흩어지는 모양새다. 흔적은 있음도 없음도 아닌 상태,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에 사라지지 않도록 내 삶의 흔적을 영원히 새겨두고 싶다. 실재하는 자국으로 남고 싶다. 내 인생을 온전히 향유하고 싶다. 몸에는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가는데, 마음은 늘 시간을 거스르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데, 나는 서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 떼기도 힘이 부친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부지런히 매일을 살아내면 조금이나마 답이 보일까? 영원히 알 수 없을까? 그냥 그림이나 그려봐야겠다.